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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 여행

✝️ 사도행전 17장 — 전체 내용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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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약방의 감초 처럼 알짜배기 성경 말씀을 찾아 전해드리는 성경 가이드 감초 집사입니다.

오늘은 16장에 이어서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 주변국들과 열방으로의 전도 사역을 펼치는 내용인 사도행전 17장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려 합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 한 분, 한 분의 모습들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돌아보아야 할 모습과 바로 지금 바꾸어야 할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당시의 초대 교회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생활을 하였는지 등등 오늘도 하나 하나 짚어보며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 


📖 사도행전 17장의 배경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 베뢰아, 그리고 아테네에서의 사역을 기록합니다. 특히 이 장의 후반부에 기록된 아테네 아레오바고 설교는 바울의 설교 중 가장 철학적이고 지성적인 것으로, 당시 그리스 철학과 문화의 중심지에서 복음이 어떻게 선포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모범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은 복음은 어떤 문화적, 지적 환경에서도 담대하게 선포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환경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 1~4절 — 데살로니가에서의 사역

 

사도행전 17:1~3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빌립보를 떠난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이자 중요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관례대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유대인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일관된 방법이었습니다.

 

세 안식일 동안 바울은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습니다. 그의 설교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됩니다. "뜻을 풀어" 성경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바울의 설교 방법은 오늘날에도 귀한 모범입니다. 청중의 기준점인 성경(구약)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청중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들이 모르는 것으로 나아가는 탁월한 의사소통 방법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7: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세 안식일의 사역 결과 경건한 헬라인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하여 이 교회를 격려한 것을 볼 때,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 5~9절 — 데살로니가에서의 핍박

 

사도행전 17:5~7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한 패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들 몇 사람을 읍장들 앞에 끌어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이르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불량한 무리를 모아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바울 일행이 머물던 야손의 집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자 야손과 형제들을 읍장들 앞으로 끌고 가 고발했습니다.

 

그들의 고발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이 말은 비난처럼 들리지만 실은 복음의 능력에 대한 역설적인 찬사였습니다. 복음은 천하를 어지럽게 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예수님이 참된 왕이심을 선포하는 복음이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오해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7:8~9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보석을 받고 놓으니라

 

읍장들이 소동했지만 야손 등에게서 보석을 받고 풀어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상황이 불안정해지자 바울 일행은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 10~15절 — 베뢰아에서의 사역

사도행전 17:10~12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니라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니

 

베뢰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서 가장 칭찬받는 청중에 대한 묘사 중 하나입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여기서 너그럽다는 것은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편견 없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였습니다.

 

그들의 특징이 두 가지로 기록됩니다. 첫째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말씀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니라" 바울의 말씀이 성경적으로 맞는지 스스로 확인했습니다.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성경을 직접 살펴 검증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조합이 바람직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되, 스스로 성경을 통해 확인하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라는 표현이 오늘날에도 올바른 말씀 수용 태도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헬라 귀부인과 남자들도 적지 않게 믿었습니다.

 

 

사도행전 17:13~15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선동하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 가는 길로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 머물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아테네까지 데려다 주고 실라와 디모데에게 가능한 한 속히 자기에게 오라는 바울의 명을 받아 떠나니라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따라와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형제들이 바울을 피신시켜 아테네로 보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아 새 성도들을 돌보았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 16~21절 — 아테네에서의 바울

 

사도행전 17:16~17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아테네는 당시 세계 최고의 문화와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신들의 신상과 신전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본 것은 "우상이 가득한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격분했습니다. 격분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열심에서 나오는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아름다운 문화 도시를 보며 감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이 우상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며 격분한 것입니다.

 

바울은 격분한 채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회당에서 유대인과 경건한 이방인들과 변론하고,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격분이 사역의 동력이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7:18~21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함이러라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 교훈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테네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아테네의 철학자들도 바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쾌락이 최고의 선이라고 가르쳤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성과 덕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두 대표적인 철학 사조였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며 무시했고, 어떤 이들은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려갔습니다. 아레오바고는 아테네의 최고 법정이자 종교, 도덕, 교육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었습니다. 새로운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공개 포럼이기도 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새것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잘 보여줍니다. 이 지적 호기심이 바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 22~31절 — 아레오바고 설교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사도행전 전체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문화적으로 정교한 설교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이방인 청중에게 맞게 설계된 이 설교는 복음 전도의 탁월한 모범입니다.

 

 

사도행전 17:22~23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테네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은 비난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이것은 비판이 아닌 관찰이었습니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의 종교적 열심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테네를 다니며 본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제단을 언급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설교 전략의 핵심이었습니다. 청중의 문화와 경험 안에서 복음의 연결점을 찾은 것입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아테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중이 이미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복음으로 나아가는 탁월한 접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아테네의 신전들처럼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무언가 부족하여 사람의 섬김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도 신은 물질적인 신전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7:26~28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고 각 나라의 역사와 거주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선언이 나옵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 시인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이것은 그리스 시인 아라투스와 클레안테스의 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이 아닌 그리스 시인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청중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복음으로 나아가는 다리를 놓았습니다. 이것이 탁월한 문화적 소통의 모습입니다.

 

사도행전 17:29~31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바울은 논리적으로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이라면,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 새긴 것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핵심으로 나아갔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는 하나님이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회개를 명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날에 정하신 사람으로 천하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아레오바고 설교는 창조에서 시작하여 심판과 부활로 마무리됩니다. 성경을 모르는 이방인 청중에게 맞게 설계된 복음 선포였습니다.


📖 32~34절 — 아레오바고 설교의 반응

 

사도행전 17:32~34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것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더라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아레오바고 설교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첫째, 조롱하는 자들 : 죽은 자의 부활을 들었을 때 조롱했습니다. 그리스 철학에서 몸의 부활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몸은 영혼의 감옥이라고 생각하여 죽음 후 몸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오히려 나쁜 일로 여겼습니다.

둘째, 더 듣고 싶다는 자들 : 즉각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더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관심을 보인 것입니다.

셋째, 믿은 자들 :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다른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아레오바고의 고위 관리가 믿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테네에서의 사역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매가 적었습니다. 큰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고 바울은 아테네에 대한 별도의 서신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아테네에서 철학적 접근을 시도했다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후 다음 도시 고린도에서는 더 단순하게 십자가만 전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2:2). 그러나 디오누시오 같은 고위 인사의 회심은 이후 아테네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 사도행전 17장 핵심 요약표

절핵심 내용핵심 말씀
1~4절 데살로니가 회당에서의 사역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5~9절 데살로니가에서의 핍박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10~12절 베뢰아 사람들의 모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니라"
13~15절 베뢰아에서의 핍박과 아테네로 이동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음
16~17절 아테네의 우상들을 보고 격분 회당과 장터에서 변론함
18~21절 아레오바고로 초청받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의 만남
22~23절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단에서 시작 청중의 문화에서 복음의 연결점 찾음
24~25절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이"
26~28절 하나님의 섭리와 그리스 시인 인용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29~31절 회개와 심판과 부활을 선포 부활이 믿을 만한 증거임을 선언
32~34절 세 가지 반응 조롱, 더 듣고 싶음, 믿음

✝️ 사도행전 17장이 주는 네 가지 핵심 교훈

첫째,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되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 확인하는 것. 이것이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맹목적인 수용도, 무조건적인 거부도 아닌 열린 마음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둘째, 복음은 어떤 문화적 환경에서도 전달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는 구약 성경으로,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는 그리스 철학과 시로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청중에 맞게 언어와 접근 방식을 달리했지만 복음의 핵심은 동일했습니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전달 방식은 유연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우상을 보며 격분하는 거룩한 분노가 필요합니다.

바울이 아테네의 우상들을 보고 격분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가득한 우상들을 보며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요. 격분이 없다면 사역의 동력도 없습니다.

 

넷째,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아레오바고 설교에서 청중을 가장 크게 반응하게 한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조롱하고 어떤 이는 더 듣고자 했습니다. 부활은 복음에서 제거될 수 없는 핵심입니다. 부활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 아레오바고 설교의 선교학적 의미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오늘날 선교학에서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고전적 모범으로 인용됩니다. 상황화란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특정 문화와 상황에 맞게 복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보여준 상황화의 원칙들입니다.

 

관찰 : 아테네를 두루 다니며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관찰했습니다. 비판하기 전에 이해하려 했습니다.

연결점 찾기 :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에서 복음의 접촉점을 찾았습니다. 청중의 문화 안에서 복음으로 가는 다리를 찾은 것입니다.

공통 언어 사용 : 그리스 시인의 말을 인용하여 청중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창조에서 구원으로 : 성경을 모르는 청중을 위해 창조주 하나님에서 시작하여 심판과 부활로 나아갔습니다.

복음의 본질 유지 : 모든 문화적 적응에도 불구하고 회개, 심판, 부활이라는 복음의 핵심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 원칙들은 오늘날 다양한 문화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알지 못하는 신에게" — 인간 내면의 신 갈망

아테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제단을 세운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수많은 신들을 섬기면서도 자신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신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신을 향한 갈망을 보여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쉬지 못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수많은 신들을 섬기면서도 진정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그 갈망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갈망을 인식하고 그것을 복음의 접촉점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 갈망을 외면하지 않고 복음으로 연결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사역입니다.


✝️ 마치며

사도행전 17장은 복음이 다양한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장입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 회당에서는 구약 성경으로, 베뢰아에서는 성경을 상고하는 열린 마음의 사람들을 만났으며, 아테네에서는 그리스 철학과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는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되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 확인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어떤 지적, 문화적 환경에서도 복음을 담대하고 지혜롭게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사도행전 17장은 묻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며 복음의 접촉점을 찾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는 세상을 보며 거룩한 격분이 있습니까. 그리고 어떤 청중 앞에서도 회개와 심판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본질을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사도행전 17장은 오늘도 우리에게 지혜롭고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도전합니다. ✝️

 

자,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활약하는 사도행전 17장의 정리를 마쳤습니다. 다음 소개드릴 사도행전 18장의 내용에서도 사도들의 모든 행적을 따라가보며 어떤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지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갖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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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평안하고 복된 하루 보내세요~!  감초 집사 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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